폐교에서 명소로 거듭나다, 청산도 프로젝트

Yubin Kim Yubin Kim
청산도 느린섬 여행학교, (주)오우재건축사사무소 OUJAE Architects (주)오우재건축사사무소 OUJAE Architects Modern ho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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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편제'의 배경으로 유명한 푸른 보리밭, 아담한 돌담길 사이 슬며시 보이는 우물, 맑고 푸른 다도해와 바람에 넘실거리는 유채꽃밭,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유명한 구들장 논. 이는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Slowcity)로 지정된 완도 청산도의 전경이다.

이렇듯 소중한 우리 섬의 중앙에는 2009년 까지만 해도 폐교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버려진 청산중학교의 동 분교가 건축사사무소 오우재 의 손을 거쳐 '여행학교'로 거듭났다. 한국의 전통이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아름다운 향토 도시 청산도에 애정 어린 건축가의 마음이 도사리게 된 것.

이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무분별한 재개발과는 거리가 멀다. 청산도 특유의 '느림의 미학'이 곳곳에 있는 그대로 스며들어 있으니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자. 건축물이 도시 전체와 소통하는 듯, 나름의 언어를 지니고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자연과 접점을 이뤄간다. 버려진 건물이 마치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 것만 같은 모습으로 많은 관광객에게 그 차분한 에너지를 건넨다. 향토 음식을 체험하고 생태연못을 관찰하기도 하며 머물다 가는 곳, 건축이 지닌 힘이 부각된 '느린섬 여행학교'를 소개한다.

<photographer : 김재윤>

자연 속 여행학교

2009년 폐교로 존재했던 중학교 터가 지금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뾰족뾰족한 건물이 심상치가 않다. 눈앞에는 청산도 슬로푸드의 주재료가 되는 음식들이 자라는 텃밭이 펼쳐져 있고, 건물 너머에는 캠핑이 가능한 잔디운동장이 마련되어 있다.

두 가지 외벽 마감재의 대비

여행학교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은 사진에 보이는 '테마동'이다. 중학교였던 이 건물이 지금은 뾰족한 다섯 덩이의 경사 건물로 새로 태어났다. 아무도 찾지 않는 폐교를 독특한 인기 숙박시설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겉보기에도 언뜻 1층과 2층의 마감재가 차이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1층 높이의 학교 건물은 청산도 특유의 자연석으로 외벽 전체를 둘렀다. 반면 2층의 경사진 부분은 우수한 기능을 가진 경골목으로 마감하였다. 돌과 나무가 한 건축물에서 대비를 이루며 다양한 기능과 시각적 재미를 자랑한다. 서로 다른 마감재의 색상은 밝고 어둡도록 톤을 달리하여 차이가 더욱 돋보인다.

보존과 생략

반대편 측면을 통해 이 건물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가장 주목할 점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옛 학교가 지녔던 건축 재료를 그대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돌을 여러 겹 쌓아 만드는 청산도 특유의 '적석(積石)'문화를 보존하고 강조하고 싶었던 건축가의 마음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청산도를 거닐다 보면 자주 눈에 띄는 여러 돌담길을 상징하는 듯 따스한 느낌의 외벽. 청산도 주민들이 직접 돌을 정성껏 쌓아 붙인 외벽이기에 지역적 애착이 더욱 담겨있다.

이전 건축물의 외벽은 그대로 남기되, 천장을 허물고 2층을 없애는 방법을 택했다. 기존에 안전문제가 있던 2층을 생략하고 남은 기존 층은 복층 구조로 활용하였다. 천장을 제거한 탓에 지붕을 받치고 있던 대들보의 구조물이 과감히 노출되었다. 이 부분은 지상층과 달리 목재, 특히 경골목을 선택하여 자연스러움을 불어넣고 쾌적한 기능성을 살렸다. 덕분에 특유의 문화가 담긴 1층은 홍보관과 식당으로, 2층은 네츄럴하고 자연 친화적인 숙박공간으로서의 공간적 특성 또한 두드러진다.

독특한 복층 구조

독특한 지붕의 경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복층 공간을 마련했다. 따라서 목재로 둘러싸인 2층의 내부는 더욱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각 객실마다 테마를 달리하여 더욱 특별한 느낌을 간직할 수 있다. 

객실 내부의 계단과 사다리 이외에도 편리를 위해 마련된 외부 계단이 있는데, 이곳을 통해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느림'에 대해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또 한번 갖도록 돕는다.

알록달록 가족동

본관인 테마동 오른 편에는 컬러풀하고 아담한 건물이 사이좋게 나열되어 있다. 단독으로 이용할 수 있는 숙박공간이어서 가족단위로 사용하기 좋은 건물이다.

이 공간은 이전의 학교에서 교사들이 사용하던 관사를 리모델링한 곳이다. 무분별한 재개발이 아니라  최소한의 옛 흔적 이어가려 하는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그림 같은 슬로푸드 작업장

주변 경관과 함께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이뤄내는 이곳은 '슬로푸드 작업장'이다. 지상 1층으로 이루어진 이 아담한 건물은 철근콘크리트구조와 아스팔트 글 등 평범한 자재로 마감되었지만 왜인지 아늑한 느낌을 자아낸다. 전형적인 공장 건물에 적삼목 나무를 덧대 따뜻함을 더했기 때문이다.

기능적인 건물

앞서 소개한 작업장은 내부에서 바라보면 더욱 인상적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산도에서 슬로푸드를 무시할 수 없는데, 우리 고유의 전통 장을 만드는 작업장의 기능을 하고 있다.

시간과 정성, 햇빛과 바람. 이 요소들이 장 담그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건축물의 기능도 이에 기여해 주고 있다. 입구 쪽의 벽면은 외벽을 두르지 않고 덧댄 나무에만 의존하여 통풍을 원활하도록 돕는다. 아늑한 외관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요소도 지닌 건물의 모습.

현대적인 디자인의 별동

느린섬 여행학교의 운동장은 자연을 벗 삼아 캠장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캠핑족들을 위해 별도의 샤워실과 화장실을 마련해 주었다. 이와 더불어 여행학교의 전체적인 관리소의 역할을 함께한다.  개발 전 중학교의 경비실이 있던 자리여서 이질적이지 않고 조화롭게 리모델링할 수 있었다. 유리와 조명을 활용해 디자인한 외관 모습이 모던한 분위기를 이룬다.

세심한 배려

별동은 계단을 더해 땅에서 살짝 들어 올렸다. 따라서 마치 바다에 고요히 떠있는 배처럼 보이게끔 했는데, 어두운 밤에 운동장을 밝히는 등대 같기도 하다. 유리에서 스며 나오는 아늑한 조명이 그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건축가의 이와 같은 세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이 지역, 청산도의 진정한 모습에 재개발 프로젝트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다. 지역 주민을 생각하고 삶의 기본이 되어주는 지역에 애착을 지녀야만 성공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가 다양한 건축적 요소로 따뜻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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